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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3.1절, 함평의 독립운동가 '노근후'를 기억하자:함평방송

내일 3.1절, 함평의 독립운동가 '노근후'를 기억하자

최창호 대표기자 | 입력 : 2023/02/28 [14:29]

함평군 학교면 복천리 장동 마을은 함평 노씨 집성촌이다.

이곳에는 독립운동가 노근후 선생의 생가가 있고, 그를 기리는 비문이 있다.

 

그 비문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 있다.

 

"햇불처럼 스스로를 태우신 당신

맑고 향그로운 이상을 가지신이여

민족의 긴 잠을 깨우신 겨레의 스승

조국을 내 몸보다 귀히 여긴 민족의 빛

손가락을 으깨어 본보이신 지극한 효심

난보다 고결하고 송죽보다 곧은 성품

산하에 울리는 당신의 맑은 기상

온 누리에 퍼져서 이 땅에 가득하라" 

 

노근후 선생은 1909년 학교면 복천리 장동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역사의식이 강하고, 명석한 머리를 가져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 노근후 독립운동가(1909~1992)    

 

노근후는 다시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여 1926년 3월 광주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였다.

 

1926년 광주사범학교에 입학하여 3년후 교사 자격증을 획득하였다. 그가 교사가 되려고 한 이유는 민족 독립을 위한 인재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1929년 해남 공립마산보통학교를 시작으로 교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후배들의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고, 학생들에게 우리말 노래를 가르치며 민족의식을 잃지 않을 것을 강조하였다.

 

같은 해 11월 3일 노근후는 광주학생 운동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되었다. 재판결과는 면사처벌을 받았다. 노근후는 투옥되어 온갖 고문을 받았고, 부친 노인수는 일제에 대한 분노 때문에 홧병이 생겼다 

 

이듬해 노근후의 부친 노인수는 시름시름 앓다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임종을 지켜보던 노근후는 손가락 10개를 열지하여 부친의 입에 피를 넣어 부친을 소생하게 하였으나 3일 후 끝내 부친은 숨지고 말았다.

 

노근후는 교직 생활을 하던 중에 일제에 의해 해직되었고, 7년 동안 보호관찰 대상이 되었다.

 

노근후는 이 기간동안 고향 함평에서 야학을 개설하여 학생들에게 계몽운동을 펼치며 민족의식 교육을 하였다.

 

이후 노근후는 1938년 진도 공립석교소학교 훈도로 복직되었다. 중일전쟁으로 인하여 선생 수가 부족하여 복직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1941년에는 고향 함평, 동초등학교로 부임하여 해방 이후까지 이곳에서 근무하였다.

당시 노근후는 우리말 교과서가 없는 현실에 맞추어 맞춤법 교재를 만들어 교육하였고, '태극기' 노래를 제작하여 가르치기도 하였다. 해방 후에는 함평 북초등학교 교장으로 발령이 나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1949년 목포 고등학교 교사, 1951년에는 함평 농업 고등학교 교사를 하였다.

 

1953년에는 학다리 중앙초등학교를 거쳐 1960년 함평서 초등학교 1971년 학다리 동초등학교에서 근무하다 1973년 퇴임하였다.

 

1971년 5월 '스승의 날'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가 작고한 이후 1993년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하여 대통령 표창을 추서 하였다. 후손들은 그의 유해를 2003년 국립대전 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이장하였다.

 

"이십세기 밝은 세상에 태어났거만

글 모르는 나에게는 어두운 나라

눈 뜨고 안 보이는 설움이 있고

목 메여 울지 못할 눈물이 있소

 

배웁시다 세종대왕 남기신 한글

읽읍시다 기역 니은 늦었다 말고

내 눈에 가린 티끌 내 손에 닦아

광명한 새 세상을 다시 봅시다" 

 

위 가사는 노근후가 '한글의 노래'라고 제목을 정하고 쓴 노랫가사이다.

 

▲ 아버지 노근후가 태어난 집터를 지키며 아버지가 지은 집에서 살아온 노근후 독립운동가의 장남 노경엽 씨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3월말에 펴내어 4월에 무료 배포 될 계간지 <함평사람들>제 6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노근후는 함평사회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 중에 한 사람이다.

평소 살아생전 그가 남에게 본인의 공을 알리는 것을 극히 꺼려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동안 함평사회에서 이러한 독립운동가를 널리 알리는데 인색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일이면 3.1절이다. 2023년 3.1절, 태극기를 달면서 우리 모두 자랑스런 함평에 독립운동가 노근후 선생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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