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비장애인 함께 동행하는 세상 꿈꾼다

구산마을 부녀회장 전옥란, 시각장애인 장순애씨

조영인 기자 | 입력 : 2024/03/04 [10:01]

▲ 구산마을 부녀회장 전옥란, 시각장애인 장순애씨    

 

함평군 나산면 삼구마을회관에서 조금 특별한 우정을 나누는 이들을 만났다. 두 분은 언니-동생 사이로 자매처럼 항상 붙어 다니며 마을에서 이미 유명 인사다. 10살 차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동생이 언니를 살뜰히 챙긴다. 예상했듯이 그들은 친자매는 아니다. 전옥란씨(68)는 구산2리 마을 부녀회장, 장순애씨(78)는 같은 마을 주민이다. 순애씨는 갓 성인이 된 스무 살까지 월야면 덕산마을에서 살았는데 집안에서만 생활했다고 고백했다. 순애씨는 시각장애인으로 10살에 완전히 시력을 잃었다. 순애씨가 살았던 시절은 우리나라가 경제 부흥을 이루기 전으로 새마을운동을 통해 농촌이 잘사는 일을 더 우선으로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이를 개선하는 게 국가적으로 시급한 일이므로 장애인들이 병원을 가는 것은 유토피아나 가능했다.

 

정안인(正眼人) 입장인 부녀회장 전옥란씨는 일산에서 살다가 시어머님의 건강을 보살피기 위해 남편고향인 함평으로 내려왔다. 함평에 뿌리내린 지도 15년이나 됐다. 순애씨 역시 성인이 된 후 부모님들의 성화로 결혼했으며 지금 마을로 이사 오게 됐다. 앞이 안 보이니 행동에 제약이 생기고 당신에게는 집이 전부였다. 삶의 터전이 바뀐 돌연한 정착에서 차차 주어진 상황에서 가능한 일을 해나가는 법을 익혔다. 집에서 스스로 밥도 지어 먹고 마을 회관까지 슬슬 나가 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시각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고 느릴 뿐이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본인 곁에 있어 준 남편과도 이른 나이에 사별했다. 자식들만 남았다. 순애씨는 결혼 후 딸 셋, 아들 하나 네 명의 남매 엄마가 되었다. 요즘 딸 한 명이 사위와 같이 내려와서 시각장애인 엄마를 옆에서 살펴주고 있다. 장애의 여부와 상관없이 건강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게 이상하지 않은 연세로써 시각 장애인이라면 병원 가는 것도 비장애인보다는 큰마음 먹고 가야한다.

 

반면 부녀회장 전옥란씨는 아들만 셋이다. 여기에 남편까지. 네 남자와 살다가 자식들은 커서 타지로 독립하고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볼 수 있다. 남자만 사는 삭막한 집안에서 무료함을 느낄 찰나 순애씨와 벗이 된 것은 그녀에게도 값진 인연이다. 둘은 그렇게 한 마을에서 만나 가족보다 끈끈한 관계로 발전했다. 서로 팔짱을 끼고 동네 마실을 다닌다. 이밖에도 병원, 목욕탕, 시장 등 무리 없이 당도하는 과정에서 순애씨의 지팡이 역할을 톡톡히 한다.

 

우리 애들은 일을 가면 없고 그럼 저 혼자 남잖아요. ‘언니 커피 한잔 하세전화주면 안 만날 수가 없죠.”

 

최측근인 마을 사람들은 마치 이 둘을 샴쌍둥이처럼 여기는 듯하다. 혹여 각각 혼자 다니는 모습을 보면 꼭 한 마디씩 말을 건다.

왜 같이 안 오고 혼자 왔어요?” 라고 묻곤 한다.

회관에 나올 때도 장난으로 왜 언니 안 달고 왔냐고 그러세요.”

당사자들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탈피한다는 관념을 친분의 중점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인생을 지내며 나이에 상관없이 수많은 시절 인연들을 생성하지 않는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일하고, 친구를 만나는 이상할 것 없는 일상화된 우정. 두 분이 함께 다니는 모습을 하나의 현상으로 인지하고 제 3자가 그들을 특별한 관계로 치부하고 일언반구 전하는 것도 어쩌면 일종의 편견일 수도 있다. 장애인을 도와주는 전옥란씨의 모습을 봉사적 의무에서 행하는 일이라고 보는 혹자가 있다면 부녀회장 전옥란씨 입장에서는 의아할 일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장애인들이 겪는 고충은 비장애인이 지레짐작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제일 큰 문제는 사람들이 차별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본인이 뱉은 말이 차별적 발언임을 염두조차 못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부녀회장은 순애씨 장애에 둔감한 듯 보인다. 이는 나쁜 의미가 아니다. 진정한 사이가 된 둘의 합의된 일상은 비장애인의 일상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과 동일하다. 지팡이 역할을 하는 장순애씨. 손을 잡고 순애씨는 스스로 감각하여 행동한다. 물론 갑작스러운 장애물을 만날 때는 대비해주지만 서로의 보폭은 반복된 일상에서 자연스레 균형이 맞는다. 농촌은 길이 다양해서 걷다가 보행의 변화를 취할 경우도 종종 있는데 전옥란씨가 먼저 행동을 취하면 장순애씨가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뒤 이어 오르거나 내려뛰는 식이다.

 

동생인 전옥란씨는 순애씨가 시각 장애가 있을 뿐이지 배우기만 하면 일상 반경에서 혼자서 하는 일이 정말 많은 걸 제일 잘 아는 이다. 무조건 본인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줄 거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이 또한 편견과 차별에 속한다. 친자매 사이 같기도 하고 때로는 죽마고우처럼, 마을을 활보하는 둘을 훈훈한 일화로 여기는 것도 지양하는 게 좋다. 누군가와 우정을 나누는 것을 특별하다고 칭찬받으면 이게 왜?’라는 의구심을 갖는 비장애인 세상처럼, 그저 물 흐르듯 흘러가기를 소망한다.

 

 

 

 

우리 딸하고 다니는 것도 좋지만 이 동생하고 다니면 유독 마음이 편해요. 서원이는 제 딸이긴 해도 저랑 나이가 비슷하지는 않잖아요. 울 동생은 나이 차이는 10살이지만 또래에 가깝잖아요. 손을 잡는 것도 더 편하고 안정이 되네요. 고마운 동생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가슴 아픈 일화가 있다. 동생 전옥란씨가 당사자보다 분통을 느낀 일이다. 동네에 자주 다니는 이가 순애씨를 보면서 지금 낮인지 밤인지 알아요?” 웃으며 장난을 반복했다. 순애씨도 장난으로 받아 드린듯하여 한 번은 넘어갔지만 되풀이되자 동생인 자신이 도리어 화가 나 속상함을 숨길 길이 없었다.

듣기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그만 하세요!”

참을 수 없어 뱉은 말이었다.

후에 우연히 그 분과 조우했다.

친하다고 생각해서 농담으로 한 말인데 기분 나쁠 거라 생각 못했네요. 실수했어요, 미안해요.”

 

그 분은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러한 일화만 봐도 비장애인 입장과 장애인 사이에서는 비장애인이 우위에 있다는 내심이 얽힌 대화가 오해를 동반한다. 장애인 입장에서차별적 발언이라고 느끼더라도 속내를 당당히 말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일상에서 장애인을 마주할 때 비장애인 입장에서는 어색한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비장애인들은 이론으로는 장애인들과 경계없는 세상을 살아야 한다고 배우면서도 장애인들과 구별되어 교육받았다.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관계일수록 처음엔 더 의식하여 행동해야 한다. 무심코 뱉은 말이 혹여 시혜적 태도를 과시하는 뜻은 없는지, 시각장애인을 돕는다고 으스대지는 않는지, 생각을 깊이 해야 한다. 똑같은 인간관계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조화로운 관계의 답은 부녀회장과 순애씨가 해답이다. 서로는 봉사를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며 각자의 노후에 투명한 마음의 창을 두들길 수 있는 믿음이 견고한 사이일 뿐이다. 진정한 우정은 각자 양보하고 섬세한 태도가 겸비될 때 지속된다. 원래 보이지 않은 무형의 가치들이 아름다운 것처럼, 모든 사랑이 이기는 세상에서 둘의 우애는 봄날처럼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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