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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삶을 살다간 '함평출신' 최석두시인:함평방송

비운의 삶을 살다간 '함평출신' 최석두시인

최창호 대표기자 | 입력 : 2021/12/03 [10:53]

 

 함평출신 최석두시인

 

최석두(1917-1951) 시인은 함평군 함평읍에서 태어났다.

시인의 시는 <새벽길>이라는 시집으로 1948년 남한에서 1957년 북한에서 각각 발행 되었다. 같은 제목으로 남과 북에서 시집이 발행된 시인으로는 유일하다. 함평 문학사에서 보면 함평 출신 현대시인으로 최초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최석두 시인에 대해 북한문학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시인 최석두(崔石斗, 본명 錫斗)1917919일에 전남 함평군 함평면(함평읍) 기각리에서 의붓 형제가 많은 중농의 서자로 태어났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유치원을 거쳐 함평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서 1930년 졸업했다. 그리고 이듬해 봄에 광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하여 광주에서 주로 생활했다. 그는 위 농업학교를 마친 19369월에는 경성사범학교 단기강습과 6개월 과정도 수료했다. 교원생활을 하다가 1938년에 교단에서 물러난 최석두는 일제로부터 광복을 맞기까지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다."

 

최석두 시인의 광복 이전의 삶은 분명하게 함평에 적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함평에서 행적은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시인의 생가는 기각리 어디쯤일까생가는 흔적이라도 남아 있을까?

시인이 '별이 날아가는 밤'이라 표현한 시인의 돌아가신 어머니는 어디서 어떻게 사셨을까?

11월 어느 날, 최석두 시인의 행적을 찾아 나는 나서보기로 했다.

 

▲ .최석두 시인의 손자뻘 되는 최민철씨가 아버지로 부터 생가라고 얘기 들었던 기각리 집 두 곳.    



 최석두 시인에게는 최강윤이라는 이복형이 있었다. 다행히 함평에는 최강윤의 둘째 아들인 최우원과 최강윤의 큰손자인 최민철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아냈다먼저 연락이 닿은 최민철(59)과 시인의 생가를 찾아 나섰다최민철은 얘기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이 길을 가는데 "여기가 작은할머니가 사셨던 집이다." 하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우리는 그 집을 찾아나섰다. 

 

옛 함평군 보건소가 있던 언덕을 넘었다. 군청 뒤로 난 길에 은행나무가 도열하듯 양쪽으로 서 있는 지점에서 최민철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집 같기는 한데 올라오기 전 저 아래 집 같기도 하네."

오래전 기억은 현장에 와서도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생가터로 유력한 기각리 집 두 군데를 촬영했다북한 문학사전 기각리가 맞다면 최민철이 증언한 두 집 중 한 곳이 맞다내려오면서 '읍사무소에서 제적등본을 열람하면 지번을 정확히 알 수 있을까?', '월북자라 자료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최석두 시인이 작은아버지가 되는 최우원(84)을 모시고 최석두 시인의 어머니가 살았다는 곳으로 향했다.

 "여기여. 여기쯤이네. 작은할머니가 혼자 사셨어. 나 초등학교 2학년 때여. 해방되어 담양서 우리 집이 함평으로 이사 와 살았거든. 그때부터 명절 때면 세배하러 다녔어. 흙으로 지은 째깐한 초가집이었어. 어린 내가 봐도 불쌍하게 사셨어."

 

▲ 기각리 집터가 이 동네였다면 시인은 지금의 기산이 집 뒷산이고 동네 우물도 이곳 우물을 쓰지 않았을까?    

 

 

최석두 시인의 어머니는 지금의 함평학다리고 자리 한켠에 지어진 초가집에서 사시다 돌아가신 걸로 추정된다. 지금은 집터 흔적이 없다. 기숙사 주차장 자리쯤 되어 보이는 곳이다최석두 시인의 아버지가 살았던 집에 대해서도 최우원은 증언했다. 최우원에게는 할아버지가 살았던 곳이다. 지금의 삼애어린이집이 있는 큰 집터였다. 옛 삼애원 자리 안집이라 말했다. 최석두 시인의 아버지가 큰부자였음이 짐작이 갔다.

 

최석두 시인의 시는 초기에는 서정성이 짙은 시를 썼다. 함평의 대표 시인인 '봄비'를 쓴 이수복 시인보다 앞선 시대 시인이다. 굳이 함평 시인 계보로 보자면 함평 시인으로는 맨 앞자리이다. 그 후 해방과 6.25라는 격동기를 맞으면서 최석두 시인은 노동자, 농민을 생각하는 신념이 강한 사람으로 변모하였다. 발표된 시 또한 그러했다시인은 오랫동안 월북한 문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모두 빨갱이로 몰아가던 세상이라 최석두를 그 누구도 말하지 못했다.

 

1991년 윤여탁에 의해 최석두 시인의 문학과 삶이 소개되었다. 함평에서는 함평 출신의 최권진 시인에 의해 최석두 시인이 문인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2001년에는 함평 출신인 강경호 시인의 석사논문에서 최석두 시인과 그가 쓴 시가 함평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최석두 생가 추정지와 어머니가 사셨다던 옛 농고자리를 다녀오고 며칠 후, 최석두 시인의 제적등본을 확인하기 위해 나는 읍사무소를 찾았다. 몇 달 전 김염소 여사의 '사진전'을 개최하기 위해 제적등본을 열람하여 사망 연도를 확인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 최석두 시인의 조카인 최우원이 어릴 적에 작은 할머니이신 최석두의 시인의 어머니께 명절이면 세배를 다녔다는 집자리. 지금 함평학다리고등학교 기숙사 주차장으로 되어 있다.    

 

최석두 시인의 출생, 지번을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읍장님께 전후 사정을 말씀드렸다. 다음 날 연락이 왔는데 뜻밖의 지번이었다. 기각리가 아닌 함평리 175번지였다. 시인의 어머니는 손숙자씨로 기록되어 있었다. 지번 마을이 함평리라면 북한문학사전 기각리와 일치하지 않는다. 앞으로 시인의 행적을 더 찾고 연구해야 할 일들이 숙제처럼 다가온다

최석두 시인은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었을 때 함평 문학의 뿌리이자 기둥이 되리라 본다. 관광자원이나 문학적 자산이 될 여지도 다분하다.

 

끝으로 함평 현대문학의 태두이자 함평 현대시인 1호인 최석두 시인의 시 별이 날아가는 밤’, ‘고향이라는 2편의 시를 옮겨 적는다.

 

고   향

<최석두>

 

앙상한 그루마다

식어 내리는 하늘이다

이제 연 하나

 

나르지 않는

남쪽 하늘이다

 

이따금

성낸 가마귀떼의

데모가 벌어지면

 

또 뉘 집의 대밭이

불붙는 거냐

 

난데없는 총소리

아낙네들의

피맺힌 가슴을 허비어

 

들이고 산이고 무너져라

개 짖는 소리

사내란 사내는

모두 끌리어가고

 

연신 시커먼 밤들이

으르렁거린다.

 

한 파수 기어이

사굿대질이 일고야 말

여기는 내 고향

고향이 있다.

 

 

별이 날아가는 밤

<최석두>

 

 

별이

날아가는 밤

 

어머니

홀로

가시다

 

세상의 슬픔이

하도나 크기에

 

서른이 넘어도

믿을 수 없는 아들

 

아들의 이름조차

함부로 불러볼 나위 없이

 

고요히

외로이

마음 할 뿐

 

언제나

참음이 앞서간 쉰여덟

 

숨막히던 가난도

약 한첩 못 쓰던 병도

수월스리 하직하시고

 

아들의 슬기롬만을

자랑삼아

 

아들의 몸가짐만을

걱정하시며

 

별이 날아가는 밤

 

수없이

끝없이 날아가는 밤

 

멀리

멀리

마지막 가시는 길

 

어머님

홀로

 

산으로 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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