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염소여사 추모 및 기념식 함평군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성대하게 열려

-김염소 여사 묘지와 은행나무 보호수 견학코스로...'김염소 상' 제정하겠다

최창호 대표기자 | 입력 : 2024/04/05 [14:44]

 

▲김염소 여사 추모식 사진 좌측상단부터  1)참가자 일동이 김염소여사를 기리는 묵념을 하고 있다.  2)이흥재 김염소여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3)손불초등학교 학생대표가 김염소여사에게 쓴 편지글을 낭독하고 있다. 4)임만규 부군수를 시작으로 참여한 인사들이 헌화하고 묵념하고 있다. 

  

5일 오전 10시 함평군 손불면 죽장마을에 위치한 김염소 여사 묘지에서 '김염소여사 추모식이 거행 되었다.

 

이 자리에는 김염소여사기념사업회 이흥재 회장과 손불초등학교(교장 이홍재) 학생들, 김염소여사 기념사업회 자문위원ㆍ이사, 손불면 사회기관단체장ㆍ면민들과 죽장 마을 주민 등 100여명이 참여하였다. 

 

추모식에서는 이흥재 이사장의 추모사가 있었고, 참여한 인사들의 헌화 순서가 있었다. 손불초등학교 학생대표의 김염소여사님께 보내는 편지글도 낭독되었다.

 

11시에는 죽장마을 마을회관 앞에서 김염소여사를 기리는 제6회 김염소여사추모기념식이 거행되었다.

 

▲ 죽장마을 마을회관 앞에서 제6회 김염소여사를 기리는 추모기념식이 열렸다. '영원한 우리의 빛이여' 라는 곽인숙 시낭송가가 직접 쓴 시를 낭송하고 있다.   

 

150여명의 인원이 함께 한 기념식장에서 김염소여사기념사업회 이흥재 이사장은 "김염소여사 묘역을 함평관내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견학공간으로 정비하고 매년 김염소 여사처럼 삶을 사셨거나 살고 있는 사람을 선정하여 가칭 '김염소 상'을 수여하겠다"면서 "이렇게 되면 많은 함평사람들이 김염소여사의 나눔과 기부 정신, 교육을 향한 바른 마음을 갖게 되리라 본다"라고 말하였다.  

 

오늘 추모기념식이 열린 김염소여사에 대하여 김염소여사기념사업회에서 간추린 김염소여사 삶을 보면 다음과 같다.

 

▲ 1930년대 동아일보에 게재된 김염소여사의 흑백사진을 토대로 그린 김염소 여사 초상화    

 

김염소 여사는 김해 김씨로 17세에 영광 염소면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불행하게도 결혼 3년만에 남편을 여의었습니다. 친정인 함평읍으로 돌아온 김염소여사는 사업을 하면서 근검절약하는 청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꾸준히 기부와 나눔을 실천했습니다.

 

김염소여사는 1927년 손불공립보통학교가 인가를 받고도 개교하지 못하자 운영 자금으로 땅 12마지기를 기부했습니다. 1929년에는 함평공립농잠실수학교 설립을 위해 11마지기 땅을 기꺼이 내주었습니다.

 

이뿐아니라 김염소 여사는 남모르게 크고 작은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특히, 명절에 쌀밥을 먹기 힘든 900여 가구 주민들에게는 쌀 2되 씩을 나눠주고, 170여 명의 호세를 내주었습니다. 당시 군민들은 여사를 살아있는 부처라 칭송하며 함평공원에 불망비를 세워 은혜를 잊지 않고자 했습니다.

   

평생을 기부와 나눔의 삶을 살다가신 김염소 여사는 자손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봉분과 묘역은 해가 갈수록 관리가 되지 않아 대숲으로 변했습니다. 2019년 폐허가 된 묘지를 보고 내고향함평천지회 회원들이 힘을 모아 2차례 걸쳐 묘역 정화를 하였고, 김염소여사기념사업회를 결성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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