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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의 추억] 해보면 고두마을 류봉래(87세)님:함평방송

[사진 한 장의 추억] 해보면 고두마을 류봉래(87세)님

류봉래 장인 어르신의 1959년도의 회갑 잔치

구술채록 윤영 | 입력 : 2022/01/06 [13:01]

 

 1959년 류봉래 님의 장인어른 회갑잔치에 처가집 가족과 함께

 

 

내 아내 전복순의 친정은 손불면 월천리 어전부락이다. 45녀 중 첫째 딸인 집사람은 내가 해보면 백토 마을에 살 때 21살인 나와 결혼 했다. 혼사는 어전마을 아짐에 의해 중매로 맺어졌다.

 

어전부락은 천안 전씨 자작유촌이었다.

처가는 종가집이며, 가장 큰 집이었다. 내가 장가 간다는 소문은 금방 번져나갔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좋은 집안으로 장가 간다고 칭찬 일색이었다.

그 때 나는 군대에서 돌아와 무얼 하며 살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직업이 없을 때인데 중매가 들어왔다. 먼저 나를 장인어르신이 보고 가셨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혼삿날이 잡혔다.

 

1960년대 류봉래씨의 젊은 날, 큰 아들을 안고 찍은 사진.

 

우리 집안 고흥류씨가 양반이라 좋다고 장인 어르신은 딸 의사도 묻지 않고, 내 얼굴도 모르는 첫째 딸을 혼인시키신 거다.

 

혼인식 날, 우리 아버지와 나는 택시도 없고, 버스도 없는 시대라 군용차량을 빌리고 사진사를 섭외한 후 차를 타고 손불로 가서 혼례를 치르고 결혼식 사진을 찍었다. 내 아내의 집은 마을에서도 가장 큰 디딜방아가 있어 온 마을 사람들이 장인 어르신 집에 와 방아를 찧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결혼 후 3년이 지난 1959년 경 가을에 장인 어르신 회갑잔치가 있었다.

나와 우리 처 사이에 낳은 우리 큰 아들이 회갑연에 참여했다. 우리아들과 동갑인 막내처남을 비롯해서 9남매를 앞세운 회갑잔치 사진을 찍었다.

 

어전부락은 일주일 전부터 잔치 분위기였다. 잘 생기고 키 크신 장인 어르신은 연신 웃음을 달고 계셨다. 큰 차일을 치고 마당에 멍석이 깔렸다. 큰 부잣집 방이랑 마당에도 사람으로 장사진을 이루웠다. 천안전씨 전병욱 장인어르신 회갑연은 밤새도록 먹고 마시고 정말 재미나고 흥겨웠다.

 

당시 태평양 화장품 대리점을 운영하였던 나는 미용사원들을 서넛 거느리고 방문 판매를 하여 서울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있었다.

장인 어르신의 회갑연에 맞추어 나는 큰 사위로서 큰 맘 먹고 두 분의 옷을 맞춰 드렸다.

 

지금 내 나이 87살이 되었다. 내 아내 전복순 여사도 86살이다. 우리 둘 사이에 33녀의 자녀들이 다 잘 자라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남부러울 것도, 모자란 것도 그닥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의 첫 행운이자 복은 마음씨 좋고, 너그러운 장인 어르신의 사위로 선택 받은 21살의 그날인 것 같다.

 

나는 장인어른을 죽는 날까지 잊을 수 없다. 참 고마운 분이셨다. 오늘 장인어른 회갑연 때 찍은 사진을 보니 장인 어른이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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