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로드

길이 숨었다

숨을 바닥에 눕혀 놓고 며칠째 가다듬는다

발걸음도 예를 차리는지 주춤거리며 속도를 재단하고

자동차는 느림의 세상을 묵도하며

와이퍼로 1월의 마음을 닦는다

온 세상이 하얀 수평이다

동심도 수평이다

도시마다 사각 수직들이 하늘로 솟아오르자

얼마 남지 않은 시골의 푸른 들녘까지 거미줄을 뻗친다

새벽부터 포클레인은 길을 찾느라

깊은 생각을 긁으며 눈을 퍼 올린다

따뜻한 믹스 커피 한 잔 건네는

내바람길의 온기는 함평의 입춘이다

누적되어 쌓인 온난화를 퍼올리듯

트럭에 한설 가득 담아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지구도 숨을 돌리며 초록 숲길을 찾고 있는 걸까

다시 숨을 내미는 블랙 로드에 겨울 아침이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