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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토종천사:함평방송

[수필] 토종천사

나금복 시인 | 입력 : 2023/01/18 [10:33]

12시쯤 전화벨이 울렸다. 다짜고짜 나비의 꿈으로 밥 먹게 나오자는 것이다. 스마트폰 사이로 또 다른 지인의 목소리도 들렸다. 미가 1번지로 가자는 지인의 말을 꽃의 언어로 잠재우더니 나비의 꿈으로 오라는 것이다. 요사이 감기 증상이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씀드렸다. 윗사람에게 거절하는 것은 나의 언행을 뒤돌아보게 한다.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약속 아닌 약속이 되어버렸다.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동료에게 먼저 나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왔다.

 

▲ 엑스포 공원에 꽃길에 심어진 꽃은 토종천사라 불리는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있다

 

식당에 도착하니 낙지 연포탕 냄비가 가스레인지 위에서 김을 모락모락 올리고 있었다. 마치 이야기 꽃을 피우기 위한 약식 같았다. 함평읍 내 볼일이 있어 나왔다가 읍내에 사는 두 사람에게 점심을 사주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커 보이는 낙지 네 마리가 냄비 속으로 들어가더니 춤을 춘다. 언젠가 나비의 꿈 사장님께서 낙지가 춤을 춘다는 것으로 표현 해 주셨다. 사람을 위로하는 말 인지 낙지를 위로하는 말 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름 신선하게 다가왔다.

 

오늘 연포탕을 사준 그분은 침묵을 옆에 끼고 산다. 자미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지가 대략 10년 정도 되었는데 그분을 토종천사라 부르고 싶다. 자미 모임에서도 주위를 살피지 않으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른다. 대화가 오고 가는 사이 가끔 유머 한마디를 툭 던져 놓으면 우리는 웃음바다가 된다. 어쩌다 보석 같은 말을 뱉어내는 재주도 가지고 있다. 나는 겸손의 성품이 언행에 베인 토종천사가 모임에 나오면 반갑고 덩달아 기분도 좋아진다.

 

술은 종종 그분과 친구가 되어준다. 소주와 맥주는 그의 마음을 읽어주는 벗이다. ~하는 소주의 깊은 맛과 하~하는 맥주의 바다맛은 그분과 닮았다. 바람과 태풍을 맞으며 꽃을 피워냈을 텐데 그분의 눈은 늘 온화한 눈빛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다.

 

그분의 가장 큰 매력은 경청이다. 우리 모임에서 타인의 말을 가장 잘 듣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이 말을 하고 있을 때 끝까지 듣고 나서 본인의 말을 꺼내기는 쉽지 않다. 나부터도 몇 초에서 몇 분을 참으면 되는 인내가 부족하다. 중간에 끼어들기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주위사람들에게 잘 베풀고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계신다. 남을 험담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30~40년 꽃을 가꾸다 보니 꽃의 말을 배웠는지 모른다. 꽃은 아무에게나 꽃의 말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진실되고 성실한 사람에게만 가르쳐주는 신의 말이기 때문이다. 60대 중반인데도 웃는 모습이 아직도 아기꽃 같다.

 

국화 등 수십 종의 꽃을 키워 나비축제와 국향대전을 꽃길로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기쁨을 선물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전국의 이름난 축제에서도 토종천사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지 정천수 사장님께 주문의 손길을 내민다. 열두 달 화훼농장을 오가며 땅방울과 함께 사는 아랑농장의 대표이자 광주 전남 화훼영농조합법인 대표이사이다.

 

오늘 '나비의 꿈'에서 그분은 살아 움직이는 토종의 맛을 우리에게 먹이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치과 치료로 씹기 불편한데도 우리의 허기를 마음으로, 돈으로 가득 채워주셨다. 나에게 연포탕은 모임에서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에 고마움을 듬뿍 얹어 먹었다.

 

오래전부터 근화를 키워내는 뚝심은 전남 함평의 자랑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국화 무궁화를 애지중지하는 그분은 근화동산을 만들고 싶은 꿈을 꾸고 있다. 우리나라의 꽃 근화동산 가꾸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나도 한그루 사서 참여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설명절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트렁크에서 선물도 하나 챙겨주신다. 늘 받기만 해서 고마운 마음과 함께 손이 부끄럽기까지 한다. 겨울철이라 좀 한가하시냐 물으니 요즘은 모종 심기에 바쁘다 하신다. 일 년 열두 달 꽃의 말과 마음을 가꾸는 화훼농장에서 웃음소리도 꽃처럼 자라면 좋겠다.

 

자미 모임 때 우리는 종종 얘기를 나눈다. 누가 주식으로 큰돈을 벌거나 로또에 당첨되면 자미 문학관 하나 짓자고, 언제쯤 우리의 꿈이 실현될 수 있을까. 아니 문학동인 자미 사무실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문학관이나 사무실이 지어진다면 토종천사가 가장 기부를 많이 할 거라 생각한다. 평생 그분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난 오늘도 토종천사에게 빚을 졌다.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토종천사의 인생도 바람에 흔들리며 꽃을 피웠고 피워가고 있으니 나산 월봉리 아랑농장에는 꽃의 말들이 우글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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