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제품 수리 반평생…이젠 일터 비워야 해 너무 섭섭해요”

광주전자 이종성 김순례 부부

조영인 기자 | 입력 : 2024/08/29 [15:24]

▲ 50년 넘게 광주전자를 운영한 이종성, 김순례 부부    

함평읍 중앙길 일대는 주민들의 편의성 증진과 원활한 교통을 위해 중앙길 도로 확장공사를 실시한다. 도시계획도로로 지정된 중앙로는 현재 일방로이며, 폭이 협소하고 주정차 차량이 많아 도로 통행 및 상가 이용에 불편이 컸다. 이에 함평군은 군비 166억 원을 투입하여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해 지역 주민의 쾌적한 생활 여건 조성을 도모하고 도심 미관을 향상하는 과정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

 

빛과 그림자처럼 이에 따라, 함평읍 중앙길에서 건재해 온 가게들의 철거가 불가피해졌다. 도시재생사업이 착수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함평의 발전을 위해선 좋은 기회라는 것을 절감하면서도 그 거리에 속한 집과 주변 가게는 어쩔 수 없이 철거 대상에 포함되는 통보를 받아야 했다. ‘광주전자를 운영하는 이종성 씨 역시 삶의 체험 현장이자 실거주지인 공간에서 누리던 소박한 일상의 조각들이 사라짐을 통감했다.

 

광주전자는 함평읍 기각리에 있는 가전제품 소매점이다. 이종성 씨는 1969년부터 운영했지만 함평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적도 없을뿐더러 부산 태생이지만 고모를 따라 아버지가 터를 옮기면서 광주에서 일시적으로 생활했다. 광주공업고등학고 전기과에 진학하였고 졸업 후 군대에서는 통신 장비 수리병을 했다. 학교에서 배운 3년이라는 시절과 군대의 특수 경험이 합쳐져 자연스레 체득한 배움을 자신만의 기술로 연마했다. 가전, 전자로 밥벌이하게 되는 수순은 사계처럼 당연했다. 초반에는 판매업 위주로 하다가 가전제품을 수리하고 전기 공사까지 손을 뻗어 외부로 일하러 다녔다. 요즈음 횟수는 현저히 줄었지만, 도움을 청하는 분들이 있으면 기꺼이 출장을 선택한다. 전기가 제공하는 편리함을 누리게 되면서 생활 속 즐거움을 책임지는 여러 발명품을 사용하고 고치는 일은 흥미로웠다.

 

광주전자는 철거를 목전에 앞두지만, 그는 서류로써 사실상 대표인 아내와 결혼 후 함께 일하기 시작한 1970~1980년대는 말미암아 함평읍 인근 가게들이 뚜렷한 전성기를 누리던 때이다. 현재 함평읍 도로가 일방로이지만 오히려 과거에는 양방향 길이었으며, 함평읍 중심축 역할을 톡톡히 하는 길목으로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오죽하면 일하느라 점심을 거르는 빈도가 많을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심지어 아내는 인근 무안에서 자주 방문하는 손님들이 오시기만 하면 점심을 대접했다. 이종성 씨는 실질적인 기술자로 거의 혼자 일했다. 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는 부피가 크지 않은 선에서는 고장 난 전자 제품을 가게에서 직접 수리하긴 했지만 대게는 출장 수리로 이루어졌다. 전기 공사 일까지 병행하는 근면함을 가진 그는, 자정이 다 된 시간에 집에 귀가하는 일이 많아졌다. 건수도 많지만, 여러 방면으로 나뉜 일 때문에 소요시간이 길었다. 정말 바쁠 때는 정식 직원을 따로 두진 않고 약간의 고생을 덜어주는 조력자와 한 철 같이하는 식으로 수고를 덜었다.

 

▲ 광주전자 건물 전경    

텔레비전, 라디오, 냉장고, 세탁기까지 다양한 전자 제품은 그의 손길을 거쳐 갔다. 함평에서 이런 업체가 많이 없어서 광주전자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 점차 브랜드 가치가 중요해지고 더욱이 고도화, 정밀화된 가전제품이 출시될수록 광주전자가 손을 뻗을 수 있는 목록은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함평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광주에서도 광주전자를 기억하고 자신의 추억이 깃든 물건을 들고 찾아왔다. 마을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 잡는 데 성공하기까지 고장 난 전자 제품을 들고 가게로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성심성의껏 문제를 해결해 주는 친절함도 한몫했다. 단순한 수리가 아니라, 필요성에 공감하고 고쳐주는 일을 함으로써 그들의 일상을 회복하겠다는 의미로 연결했다. 손님들이 가지고 오는 물품들은 생활에 긴밀한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저마다 소중한 추억이 세월에 따라 축적된 물건일 테니까.

 

함평서 살다가 광주로 거주지를 옮긴 젊은이들이 광주전자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 와 주는 게 보람이면 보람이겠지요. 물건을 판 실적보다는 소중한 추억을 선사해 준 손님들 때문에 가게를 정리 안 하고 먹고 산 거나 다름없어요.”

  

지금의 중앙로 모습과 사뭇 다른 과거를 생생히 그리고 있다. 가게들도 많이 바뀌었다. 당시에 문전성시를 이루던 식육점, 농약 집, 시계방 모두 사라졌다. 오래전 이미 도로 방향을 한 방향으로 바꾸면서 파생된 요소가 곳곳에 있다. 이종성 씨가 막 광주전자를 개업할 때는, 세를 주고 운영했다. 돈을 벌게 되자 차근차근 지금의 공간을 소유하게 됐다. 물론 재건축했고 3층까지 있는 공간이어도, 실평수는 작고 가파르다. 2~3층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때 자주 굴렀다고 회고한다. 이 부분은 특히, 주로 가게 내부를 지키고 살림까지 한 아내가 더 고생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또한 점심시간에 식당도 아닌데도 손님에게 점심까지 챙겨준 아내에게 대단히 감사하다. 아내의 배려뿐만 아니라 비교적 잦은 빈도로 무보수일지언정 마을 사람들 집으로 가 그들의 부탁을 들어준 선의를 베풀어서일까, 시장에서 채소나 간단한 식료품을 별도로 사 먹어 본 적 없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소박한 정을 나눠준 일이 많던 까닭이다.

 

막상 50년 넘게 살았던 집을 비우고 나갈 순간에 도래하니 여러 감정이 혼재한다. 받는 보상비로 이사비는 보탤 수 있을지 몰라도 가게를 정리한 후 생계까지 책임질 정도는 안 된다. 팔순이 넘어서 어디 새롭게 가게를 내서 운영하는 방향도 쉽지 않으니 사실상 완벽히 폐업에 가까운 선택을 한 셈이다. 매일 가게 문을 열어 익숙한 공기를 맡고, 가게 안에 놓인 수많은 전자제품이 풍기는 안락한 느낌을 얻었는데, 사람들의 추억이 고인 공간이 사라지니 시원섭섭하다. 광주전자를 뒤로하고 떠나야 할 때가 이렇게 금방 찾아올지 몰랐다.

 

더 이상 일을 계속할 수 없는 사실도 슬프지만 무엇보다 항상 가게를 찾아와 준, 그야말로 광주전자가 필요해서 방문했던 손님들을 곤경에 빠뜨린 것 같아 송구스럽다. 손님들의 이야기, 추억, 그리고 정서가 집약된 가치 있는 물건들을 만지고, 찾아가서 고치는 삶 속에서 기쁨을 채운 세월이 길었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들은 손님들은 이렇게 그만두는 거냐?” 이후에 어디서 가게를 다시 열 것이냐?” 등 끊임없이 존속 여부를 묻는다.

 

온전히 우리의 선택은 아니지만 어쨌든 가게를 정리하면서 손님들한테 죄송한 부분이 크죠. 광주, 목포에서도 오곤 했으니까요. 특정 물품을 고치고 싶어도 부품이 오래되거나, 업자 입장에서 딱히 돈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수리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대요. 그들에게는 큰 추억이 담겨있고 의미가 큰 물건이라 고쳐서 쓰고 싶은데 그걸 할 수 없을 때 마지막 희망으로 오는 곳이 저희 가게인 거예요. 그 마음을 전 모르지 않은 터라 도움을 드리려고 최대한 노력했어요. 철거 소식을 듣고서는 이제 저희는 어디 가서 고치죠?’ 혹은 대체 장소 좀 안내해 주세요.’ 말씀하시는 분도 많아요. 저는 80이 넘은 나이에 돈을 많이 벌려고 한 일도 아니고 그저 손님들의 삶에 작은 부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꼈어요. 아무쪼록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아내도 그렇고 참 서운해요.”

 

물건을 고치고 다시 작동되는 순간은 마치 추억이 재생되는 듯한 힘을 받는다. 감사하다고 마음을 표출하는 손님들, 이야기가 넘쳐흐르는 공간에서 충전하는 시간을 더는 나눌 수 없다. 이종성 씨 부부는 교회 말고는 별다른 사회생활 한 적 없이 일에만 몰두했다. 그럼에도, 동네 어귀에서 만나는 익숙한 얼굴들이 꼭 있다. 어르신들은 사장 내외의 얼굴을 잘 기억 못하더라도 광주전자입니다.” 하면 분명하게 알아챈다.

 

광주전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이 부부에게 평온한 일상은 다른 국면에 접어든다. 뭐든 적응하면 되겠지만, 부부는 아침 일찍 눈 뜨고 아침 식사를 즐긴다. 이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오전 시간이 너무 길고 무료하다. 점점 병원에 다닐 일도 많아지고, 여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의 시간을 피할 수는 없다. 열심히 달렸던 세월이 무색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더불어 오랜 시간 광주전자를 찾아와주신 분들의 기억 속에 보존된 한 페이지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광주전자를 통해 많은 사람과 대면하고 켜켜이 쌓인 삶의 기록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믿겠다. 비록 가게 문을 닫지만, 만남의 순간에 나눈 추억과 감동은 이종성 씨를 포함한 마을 사람들 마음에 영원히 살아 숨쉬기를마지막으로 중앙로의 역사와 정체성이 다시 쓰일 새로운 시점을 피할 수 없다면, 꼭 더 나은 방향으로 재생이 이루어져서 여러 세대에 걸쳐 내려온 소중한 재산을 포기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기를 기다리고 있겠다.

 

어렵게 살아온 세월을 어떻게 짧게 요약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이만하면 편안하게 잘 살아왔다고 말하고 싶네요. 방방곡곡 일하기 위해 운전했지만, 큰 사고 없이 가게를 마무리하는 것도 행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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