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게 함평우시장 지킨 자타공인 '소 전문가'

박연수_전 함평우시장 중개인

조영인 기자 | 입력 : 2024/06/10 [14:52]

 

▲ 박연수_전 함평우시장 중개인    

 

함평천지한우가 전라남도 근방에서 함평 ‘소’라 함은 육질이 수준급이고 등급이 잘 나온다고 소문났다. 함평 송아지는 가치를 더 인정받을 정도로, 예로부터 알 사람은 다 아는 수질 좋고 기름진 토양을 간직한 함평군에서 자란 소는 질 좋은 상품성을 자랑한다. 함평우시장이 규모가 크고 배후에는 함평시장에서 가격을 형성하면 다른 시장에서도 그 가격을 기준으로 책정한다는 말이 돌았다. 현재 함평읍 함평천지전통시장 인근 주차장 자리인 함평우시장 본 터의 변모를 목도한 역사의 산증인들, 특히 축산업을 이어온 이들은 그때의 명성을 쉬이 잊지 못한다. 우시장이 한창일 땐 소가 200~300 마리가 모였다.

 

이에 관련하여 박연수 전 우시장 중개인은 이 회고에 불을 지펴주기 적합한 인물이다. 저마다 소를 데리고 우시장에 등장하는 모습에서 기세가 엿보였다. 축산업 종사자들은 각자 집에서 보통 인당 두 마리의 소를 끌고 왔고 읍내에 있는 우시장에 도착한 직후에 땅에 말뚝을 박아서 소를 묶어둔다. 시장의 활기는 여기서 뿜어 나왔다는 전언이다.

 

박연수 전 중개인은 어릴 적 가세가 변변치 못한 편이었다. 친척 어른 중에서는 부유한 집이 제법 있었다. 머리가 클 때까지는 장남이지만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빈곤한 살림에 보탬이 되어야 했기에 가까운 친척의 농사일을 도왔다. 성인이 된 후, 삶의 거처를 확고히 해야 할 때가 되자, 어머니 가족인 외숙이 소 장사를 하는데 전라도에서 큰 손이라고 불리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따라서 우시장에 나가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는다. 100kg를 훌쩍 넘은 풍채를 자랑한 외삼촌과 함께 함평우시장을 갔다. 소심하고 숫기 없는 그는 성격 탓에 한 2년 동안은 가만히 서서 그저 우시장이 돌아가는 큰 그림을 파악하는 데 치중했다. 수줍음이 많은지라 먼저 말을 “b는 것이 쉽지 않았고 중개인의 필수 업무인 흥정을 잘하는 것도 그토록 어려웠다.

 

그는 곧바로 능숙한 중개인처럼은 못했지만 젊은 나이에 글을 쓸 줄 알아서 우시장에 함께 가는 경력자 어른을 도와 전표 작성에 힘을 쏟았다. 소 거래를 할 때 매수인이 누구이고 가격은 얼마를 받는지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그 시절 지폐 한 무더기를 마대 포대에 가득 담아서 짊어지고 가 거래를 했다고 말할 만큼 우시장이 성시를 이뤘다. 젊음은 체력이 따라주는 수혜를 받으니 부족함을 이겨내기 위해 더 많이 보고 내 일처럼 체득화하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2년을 몸에 익히기 위해 우시장의 면면을 살핀 후 우시장 중개인으로 실력을 펼쳐 갈 기회에 당도했다. 중개인을 예순 하나까지 했으니 이십 대가 된 직후부터 따져도 세월만 40년이다.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전국 최초로 어린 나이에 중개인을 이뤘다는 빛나는 이력을 얻게 되었다. 중개인이 되는 과정에서 따로 시험은 치르지 않아도 일하는 자격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조합장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중개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질을 평가받는 것이다. 능력뿐만 아니라 사람을 상대하는 스킬을 살피기도 한다. 중개인으로서 우시장에 나갈 때는 보통 새벽 1-2시 즈음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함평뿐만 아니라 무안, 영광, 영암, 때로는 강진, 완도 섬까지 가는 걸 주저하지 않았으니 근면하게 살았다고 자부한다.

 

중개인은 소 가격을 측정하려면 눈으로만 봐도 짐작으로 소 kg를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경험치가 올라가면 판단하는 능력이 생긴다.

 

 

몇 킬로 되겠다~ 말한 숫자와 크게 오차 범위가 안 났지.”

 

지금 키워지는 소들은 사료도 좋은 걸 먹이기 때문에 1,000kg에 육박하는 소도 많고 평균적으로 400kg를 넘는다. 예전에는 400kg에 가까운 소를 흔히 만나기는 어려웠다. 원체 소들이 살찌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두 당 책정되는 소 가격도 높지 않았다. 농촌 사회에서는 농업이 주업이라서 농우소 가치가 컸다.

 

 

수소는 일을 잘하긴 하나 상대적으로 사람한테 소위 땡깡을 부린다고 말할 수 있는데, 대적하려고 하는 위험성이 존재해서 10마리 중 겨우 한 마리가 수소일 뿐이다. 순하고 일도 잘하는 암소 거래가 편차없이 안정적이었다. 중개인은 암소일 경우는 젖을 잡고 임신우인지 여부까지 판단해야 한다. 과거에는 농기구가 기계화되지 않았고 쟁기질 역할까지 소가 했기에 함평우시장이 보다 성황했다. 일을 대신해주는 소를 거래하는 상황에서 가격 측정이 중요하다. 중개인의 핵심 역할이긴 하나, 중개비를 많이 받는 것은 아니다. 시세가 보통 정해져 있고 중개인들은 중개 수당이 핵심 수입 수단이어도 오롯이 중개인 몫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니다. 중개사 사무실과 나누는 부분이 있고 거기에 전표 작성에 필요한 수수료를 제외하면 수중에 남는 돈은 더 없다. 경력이 쌓일수록 책정받는 소 가격이 올라간다 해도 중개 수당을 많이 받는 의미는 아닌 셈이다.

 

박연수씨는 함평 우시장 중개인 모임 중개회 회장직을 오래 했다. 50명에 가깝던 회원이 열 명 단위로 줄었고 함평우시장의 판도가 경매 시스템으로 전환되면서 자연스레 일을 정리했다. 환갑을 기점으로 일에 미련을 두지 않고 취미 생활과 건강을 위해 과감히 접었다. 경매 시장이 활성화되어서 중개인을 쓴다 해도 평균 2명이 적정 수준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 더 젊고 어려운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선배의 소임이라는 마음도 컸다.

 

앞서 말했듯 중개인이 받을 수 있는 중개 수당은 엄격한 기준이 있어서 큰 이익은 낼 수는 없다. 박연수씨는 여전히 축산업을 하고 있는데 당시 시세를 고려해보면 소 한 마리 기준 2천 원부터 측정했다. 지금은 매수인과 매도인이 각각 2만 원씩을 부담한다.

 

박연수씨는 축산을 하기 위해서는 반은 수의사 신분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많을 때는 150마리까지도 키웠지만 현재는 50마리로 확 줄였다. 번식우가 이윤을 많이 남기지만 새끼를 내고 하는 과정에서 고생이 너무 크다. 송아지 같은 경우 설사라도 하면 세균 수가 축사 전체로 번지는 격이다. 요즘이야 사료가 좋고 소의 크기도 많이 커졌다고 하지만 사람이 들이는 정성은 무시 못 한다. 제 자식처럼 밤낮으로 몸을 사리지 않고 지켜야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룟값이 높아져도 어느 정도 이익을 보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룟값은 계속 오르는데 소 값은 떨어지는 현상이 심각하다. 더욱 문제는 한우 소비가가 비싸다는 점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고깃값을 내려야 육류를 많이 소비할 텐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다. 높은 고정비에 비해 소를 찾는 소비자는 훨씬 적으니 이윤이 남기 힘든 구조다.

 

 

 축협에서 위탁받아 축산을 하는 농가의 비율도 높아졌지만 그 가격도 감당하기에는 만만치 않아요축사 짓는 금액도 몇억씩이나 드니까 점점 수지타산이 안 맞는 사업으로 변할 것 같아요무엇보다 소 자체가 생태적인 원가를 물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데 소는 최소 30~35개월까지는 자랄 기간이 필요하잖아요최대 2년 이상은 걸린다는 말인데 텀이 존재하는 이상 당장 적자가 흑자로 변화하지는 않겠고요지켜봐야죠예전에는 좋은 소는 600만 원 이상의 가격도 받았는데 지금은 400만 원만 받아도 정말 잘 받는 거예요그렇다고 그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죠불과 몇 년 전상품성을 올릴만한 좋은 정액을 저렴한 가격에 풀어 번식하게 했고 그 영향으로 함평 소의 우량화 기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이 지점에서 육질이 상승한 긍정적인 면모도 있었어요어떻게든 괜찮은 쪽으로 흘렀으면 좋겠어요.”

 

가와 축협이 정책적으로 대안을 내놓아도 곧바로 전망이 밝아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소가 출하되는 데까지 적정 흐름이 있고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그 시기를 거스를 수는 없으니 말이다. 송아지를 거래하기 위해서 성장하는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함평군은 함평천지한우의 브랜딩 도달 범위를 더욱 넓히기 위해 한우 농가의 어려움이 곧 함평의 위기라는 경각심으로 유려한 방안을 강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고
함평방송
메인사진
함평방송을 응원하는 일은 함평의 변화와 발전을 이끄는 일
1/5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