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란 전후 나라를 위해 순국한 함평이씨 지평공파의 의로운 인물들

최창호 대표기자 | 입력 : 2024/06/05 [14:56]

 

▲ 함평읍 대덕리 대천마을 입구에 위치한 함평이씨 지평공파 삼강비

 

삼강은 충(), (), ()을 뜻한다. 여기서 삼강은 유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참으로 중요한 이념이다. 현대에 와서 이런한 이념중 열()에 대한 생각은 예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다. 그러다보니 삼강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어 있다. 하지만 충, 효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야 한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함평의 이우춘 장군과 그의 아들 이숙, 며느리 흥양유씨, 그의 손자 만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함평읍 대덕리 대천마을에는 함평이씨 지평공파 후손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이 대천마을에서 곤봉 쪽으로 위치한 도로변에는 함평이씨 지평공파 삼강비가 세워져 있다. 이 삼강비는 1908년 함평군내 유림과 후손들이 세웠다. 그 후 2001년 후손 이돈상이 사비를 들어 지금의 위치로 삼강비를 옮겼다. 삼강비에 글은 이우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이 된다.

 

이우춘은 임진왜란 당시 나주에서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킨 호남의병의 선봉장 건재, 김천일과 광주에 고경명 의병장과 뜻을 같이하며 교류가 있었다. 이우춘은 1592년 나주 출신 사대부이면서 이종간인 진경문과 의병을 일으켜 평안도 및 행주전투에 참전하여 승전하였다. 이 공으로 선무원종이등공신에 오르게 되었다. 그후 이우춘은 정유재란 때 순천 예교전투에 참전하였다. 교전중 후원병이 끊기자 이우춘은 홀로 말을 타고 적진에 뛰어 들어 많은 적을 사살하다가 유탄에 맞아 순절하였다. 아버지의 쓰러진 모습을 보고 이우춘의 아들 이숙이 달려가 시신을 붙들고 통곡하자 적들이 이우춘의 아들임을 알고 총을 쏘아 쓰러뜨렸다.

 

이우춘의 며느리 흥양 유씨는 이 소식을 듣고 울부짖기를 시아버지는 나라를 위해 순절하셨고, 남편은 아버지를 따라 싸우다 죽었는데 내가 살아 무엇을 하겠는가?” 며느리 흥양유씨는 곧 따라 죽기를 작정하고, 곡기를 끊었다. 그러자 이우춘의 손자 만령이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손가락을 깨서 입에 피를 넣어 드리니 소생하여 3일 동안을 연명하였다.

 

함평에 이우춘 집안의 이 사실이 알려지자 선조는 놀라고 슬퍼하여 예관을 보내 제를 지내게 하고 호조판서를 내렸다. 원종훈에 기록하게 하고 녹권을 하사하였다. 인조 때는 병조참판을 내렸으며 옥패를 하사하였다. 이 옥패는 지금 학교면 함평이씨 지평공파 후손인 이춘식의 집에 보관되어 있다.

 

▲ 815번 도로변 대천마을 입구에는 함평이씨 지평공파 삼강비유적지사업화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다가오는 610일 함평이씨 지평공파 문중에서는 '삼강비유적지사업화'를 위해 이우춘 장군이 잠들어 있는 묘역을 정비하기 위한 1차 모임을 갖는다.

   

5일, 이계술 함평이씨 지평공파 문중 총무는 함평이씨는 대대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무인집안으로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면서 이 가운데 임진란 전후 지평공파의 이우춘 장군과 함평 향교 의향함평비석 뒷면에 기재되어 있는 선무원종공신 1등의 의로운 장수 이춘란 장군, 이우춘 장군의 아들 이이숙, 동생 이수춘은 모두 함평이씨 지평공파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표적인 의인들이다"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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