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어르신들 문화 향유 기회 확대 위해 힘 쏟겠다”

이진행_ 대한노인회 함평군지회 노인대학장

조영인 기자 | 입력 : 2024/05/28 [19:26]

▲ 이진행_대한노인회 함평군지회 노인학장    

 

현재 문인화(文人畵) 강사로 활동하는 대한노인회 함평군지회 노인대학이진행 대학장은 함평군청에서 사무관으로 퇴임, 2010년부터 6년 동안 함평문화원장으로 재직하며 함평향교 전교를 역임했다. 노인 활동 지원사업비를 확보하여 어르신 일자리 창출에 힘쓰는 데 기여도 했고, 지금까지 노인들에게 정신적 자극과 활기를 심어 주며 사회적 연결성을 발현한다. 대동면 향교리 출생으로 함평을 벗어난 적 없고 천연기념물 제108호인 대동면 향교마을 숲의 정기를 받으며 애향을 표출했다. 큰 도시로 나갈 욕구보다 자연에 마음이 더 갔다. 새가 지저귀고 나무 냄새가 향긋한 농촌 정취에 넘실거리는 햇빛의 반짝임까지 평온의 대상이었다.

 

축구처럼 인생이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뉜다면 가족과 자신의 삶을 위해 전투적으로 전반전을 뛰었고, 후반전에는 내 고장 함평의 평온함과 마음의 안정을 전달하는 표현 수단에 매진한다. 하루하루가 영감의 원천이 되기에 고향에 깃든 정감에도 갖가지의 감각이 들끓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예술로 표출하면서 무사태평한 인생 후반전이 이토록 즐거울 수 없다. 유년 시절을 반추하면, 예술적인 소질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배움을 종용받는 실력은 아니어도 평범하게 함평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학다리 중·고등학교를 진학하며 친구들과 교류한 기억은 호재로 작용한다. 집에서 어머니가 신문지에 글씨를 연습하는 모습을 자연스레 관찰한 경험도 한몫했다.

 

1987년도에 한글서예의 대가 평보 서희환 씨 집안 중 한 분이 글씨로 이름을 날렸다. 그 우연한 배움의 장에 참여하게 되면서 예술의 한 챕터가 시나브로 펼쳐진다. 그렇게 3년을 배웠지만 배움은 끝이 없다지 않은가? 한 시간 거리인 광주까지 나가면서까지 더 깊은 물을 파고 싶었다. 멈출 수 없는 열정이 5년간 광주로 이끌었다. 서예를 배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문인화(文人畵)까지 손을 뻗었다. 광주 궁동 예술의 거리로 가서 예술에 열정을 불태운 지도 어언 30년에 도달했다. 사제 관계로서 우송헌 김영삼 선생을 만난 건 커다란 행운이다. 본인보다 한창 어린 나이인 선생을 존경했다. 스승에 대한 예우는 지금도 숨길 수 없다. 진도 출신이지만 서울에서 화실을 차리면서 거주지를 옮기면서도 여전히 지도받는다. 문인화는 직업 화가가 아닌 문인 사대부들이 그린 그림으로써 기법에 얽매이거나 세부 묘사에 치중하지 않고 그리고자 하는 사물의 내적인 면을 표현하는 사의를 중시한다. 그림에 기교가 나타나지 않도록 치졸한 맛을 살려 천진함을 강조하는 특징을 갖는다. 수묵산수화와 사군자가 주요 소재다.

 

▲ 함평향교에서 안현 전교와 함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며 경험과 기억이 축적되는 동안 가장 빛나는 순간은 문인화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 총체이다. 점차 늙어가는 몸과 다르게 정신만은 어려졌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순간 애써 숨겨온 감각과 영감이 범람한다. 문인화는 그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서투른 솜씨와 예술에 대한 무지를 막연하게만 느끼지 않고 배워갈 과정을 그려서 마음이 평화롭고 안정시키는 데 내면을 집중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소통의 일면임을 깨닫는다.

 

그가 스승한테 배운 것처럼 작가로서 두각을 내면서 배움을 전파할 수 있었다. 대동면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장애인 직업전문학교에서 무료로 학생을 강의했다. 또 함평 성당, 1318 나비 학당 등 평균적으로 2년이라는 기간 동안 가르침의 주체로 활동한다. 함평향교 전교를 역임하면서 여름방학 기간에 향교로 오는 학생에게 서예와 문인화를 매년 가르쳤는데 벌써 16년 차에 접어들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수업도 출강한다. 광주 서구 노인복지관까지 갔었다. 대게 함평에서는 함평읍사무소에서 행하는 프로그램 일종으로 서예와 문인화를 가르쳤다. 대동면사무소에도 자치센터 프로그램들이 잘 구성돼 있다. 일주일에 두 번 수업한다. 가만히 앉아서 정신과 에너지를 오롯이 쏟는 문인화를 그리는 데 일말의 방해 요소가 없어야 하기에 수업을 함평 미술관 다목적실에서 진행한다.

 

이진행 노인대학장은 이미 스승의 지도와 더불어 열심히 노력한 세월이 있기에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 서예대전, 한국문인화대전, 전국 무등미술대전, 전남미술대전, 광주시 미술대전 초대작가, 추사 김정희 선생 추모현장 휘호대회 심사위원으로 활약했다. 서예 부문에서는 광주시미술대전, 전남도미술대전, 대한민국 캘리그라피 서예 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미술협회 회원전, 한국문인화 협회전, 영호남교류전, 광주시 미협전, 광주전남 문인화협회전, 먹그림 회원전, 함평 문인화 동호회원전 등 많은 전시회에도 참여했다. 삶의 후반전에서 본격적으로 맞본 예술적 자유와 창의성은 인생에 새로운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아울러, 서예대전 대상, 무등미술대전 우수상 전국목우공모전 우수상, 동학미술대전 최우수상 등 함평 군민의상 등을 수상하여 참여하는 대회마다 실력을 인정받으며 깨달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진정한 젊음은 마음속에 있으므로.’ 전통 문인화는 차분히 앉아서 묵향을 음미하며 섬세한 손길로 탄생하는 예술 작품이다. 엄중한 태도로 서예를 하고 사군자를 그리려면, 어르신들은 좌식으로 앉는 것부터 힘들다. 육체가 노쇠하여 자연스레 따라오는 어려움을 견디면서 작품을 만든 것이다. 이런 한계를 딛고 함평 내 작가를 다섯 명이라도 후예를 양성했으니, 형용할 수 없는 보람이다. 더구나 공모전이나 참여하는 대회에서 입선 및 특선의 영광을 지켜보는 것도 전통을 영속해 나가는 임무를 수행한 뿌듯함을 시사한다.

 

그가 대한노인회 함평군지회 노인대학대학장으로 있는 노인대학은 노인들의 건강을 유지하는 방안으로써 에너지를 되찾고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데 큰 몫을 한다. 삶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 그 기회를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여러 차례 겪어 온 분이다. 함께 걸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모이는 것만으로 중요한 가치다. 노인대학을 관리하고 노인들의 사회적 단절을 막는 인성 교육에 일조하고 문인화 강사로서 함평이 문화·예술 소외 지역이 되지 않도록, 향유 기회 증진을 향한 열정과 노력을 나누고 있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가만히 있으라는 법은 없어요. 끝없이 지역사회에서 배움을 전달하고 싶어요. 나 혼자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바람이죠.”

 

노인대학의 강의는 1년에 40회 정도, 2시간씩 진행된다. 50명 이상의 노인이 학생의 신분이 되어 배움을 누리고 저하되는 신체적 활동을 촉진하면서 뇌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건강한 노후 생활을 지원하면서 노인대학에 나가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존중감을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노인의 고독감을 막는 데 상당히 기여 한다. 기존 수업 외에도 함평군수, 보건소장, 경찰서장 등 덕망이 두터운 단체 기관장을 모셔 삶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외부 특강을 실시해 한 번씩 환기한다.

 

()함평문화원장이자 소박하지만 지역 내 작가로 문인화를 전수하는 데도 한 획을 그은 이진행 작가의 입장으로 자문하자면, 전라남도 22개 시군이 지역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와중에 함평 예술인은 문화·예술 방면에서 자못 소외당한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인근 무안만 봐도 퇴직한 직장인들이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운영된다. 함평 역시 현 수준에서 만족하지 않고 더 열정적으로 기존의 문화적 소산을 확대, 발굴하고 문화·예술 관련 시설을 개선하여 함평의 예술적 자산을 더 알리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 이미 함평에 미술관이 존재하고 새롭게 다목적 센터의 기능을 하는 장소도 개설되지만, 어르신들이 노후 프로그램을 영속할 수 있는 곳들이 과연 기동성 좋은 곳에 있는가? 이 부분은 확언하기 어렵고 다소 미흡하다.

  

더욱이 시골 어르신들은 행복 택시를 이용하든, 개인의 노력으로 참여한다고 했을 때 이 범위에는 거동이 불편한 분들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자의로 나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한다. 지역 문화예술의 네트워크를 마련하는 것과 별개로 소외 계층 없이 모든 군민에게 닿을 만한 문화·예술 향유 범위를 늘리는 게 핵심이다. 간단히 어필하면 어떤 시설이더라도 주민들의 삶의 변방부보다는 중심부에 가까울수록 좋겠다.

 

이진행 학장은 문인화와 서예에 수년간 매진한 대가로 잔잔하지만 흔들리지 않은 견고한 내면을 확립했다. 예술적인 표현 수단을 배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으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묵으로 획을 그려가는 매 순간, 평화로운 작품 세계에 도달했다. 이진행 씨 삶의 흔적은 한 장의 종이 위에 그린 그림에 덧대져 있다. 안식의 땅으로 향하는 여정의 끝이 다가오면 당신의 삶은 줄곧 손끝으로 탄생한 예술 작품의 향연이었음을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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