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탐방] 매년 5월 경로잔치 베푸는 ‘범덕회’ 자랑스러워요

최창호 대표기자 | 입력 : 2024/05/15 [13:20]

 

▲ 신광면 호덕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호랑이 동상    

  

호덕마을은 신광면에 위치한다. 함평자연생태공원 앞 23번 국도에서 서쪽으로 500여미터에 들어서면 나타나는 이 동네는 마을 초입에 호랑이 동상이 서 있다. 이 마을의 유래는 호덕경로회관 앞 비석에 다음과 같아 새겨져 있다.

 

호덕마을 형성은 약 300여년전에 한양조씨가 입촌하여 정착하게 되었으며 마을 뒷산 바위의 형상이 범과 같이 생겼다하여 호덕이라 하였다는 설과 옛날에 마을에서 호랑이 덫을 놓았다하여 범덕굴이라 하였다. 하는 설이 있으나 지금은 호덕이라 부르고 있다."

 

3월 어느 날 이 마을 김대열 이장이 함평방송에 전화를 해왔다.

“511일 우리 범덕회에서 11회째 효도잔치를 합니다. 취재를 부탁합니다.”

 

범덕회는 호덕마을 출신의 사람들의 모임이다. 처음 조직 할 때는 55여명이었는데 세월이 흘러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다 보니 지금은 35명 정도 된다. ‘범덕회의 출발은 지금 범덕회고문인 박종삼 씨, 초대 총무인 김세권 씨가 처음 의견을 내어 모임이 시작되었다. 서재현 씨를 초대회장으로 제2대 회장은 김영균 씨, 3대 회장은 김대열 현, 이장이 맡았고 이번에 새로 취임한 제 4대회장은 박종록 씨다.

 

동네에 들어서서 마을 이장인 김대열 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범덕회고문인 박종삼씨가 마을회관 앞으로 나오셨다. 반갑게 인사를 했다.

 

▲ 호덕마을 입구에 나무를 심어 호덕마을을 숲 속 마을로 만든 박종삼 '범덕회' 고문 그는 '범덕회' 모임을 추진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제가 1975년부터 1983년까지 예비군중대장을 했습니다. 사병제대를 했습니다만 예비군간부후보생으로 교육을 받고 소위로 함평에서 근무를 했지요. 예비군중대장 일을 마치고 고향에 들어와서 보니 눈만 뜨면 형님, 동생 부르고 아재. 아짐 인사했던 분들이 많이들 객지로 떠나셨더라구요. 그래서 동네 동생인 김세권에게 우리 모임을 하나 만들자. 1년에 한 번은 얼굴을 봐야 안 쓰것냐?“ 우리 세권이 동생도 좋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서재현 씨를 초대회장으로 하고 김세권이가 초대 총무로 범덕회 시작을 했습니다

 

박종삼 범덕회 고문의 말이 끝나자 나는 여쭸다.

 

마을초입에 나무가 잘 가꾸워져 있어서인지 동네가 참 아름답습니다. 누가 이리 잘 가꾸신거예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 고문님께서 나무를 좋아하세요 김대열 이장이 박종삼 고문을 가리켰다. “우리 이장님도 나무를 좋아하시지만 저도 나무를 좋아합니다박종삼 고문이 얘기했다.

 

그러고보니 이장님 댁 주변도 잘 가꿔워진 나무가 동네를 숲 속마을로 보이게 하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김대열 이장님 511일 범덕회 주최 효도잔치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나는 11회째 열린다는 효도잔치 행사에 대해 듣고 싶었다.

 

우리 마을에는 범덕회에서 효도잔치하기 이전부터 매년 정월이면 어른들을 모시고 세배를 드리는 풍습이 전해내려왔습니다. 그러다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보니 이 전통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고문님이 1년에 한번 얼굴이나 보자 해서 시작이 된 게 그 시작입니다. 효도잔치 한 번 할라믄 예산이 4백만원 이상 들어갑니다. 보통 범덕회에서 250만원정도 내고 나머지 금액은 찬조로 채워집니다. 회장은 선물을 준비했다가 오시는 사람들께 드립니다. 이번에는 참기름, 양파 이렇게 드릴려고 준비해뒀습니다. 어느 모임이나 그렇듯이 회장이 돈을 쓰고 헌신적으로 해야 해요. 이날 잔치는 도시에 나가 사시는 분들이 고향을 찾아오는 날, 홈컴밍데이와 비슷합니다. 날짜는 매년 52째주 토요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번 총회 때 아마 결정될 것 같은데 4월 시제 고향에 왔다가 5월 바로 와야 분들이 많아 가을 국화축제 때로 날짜가 옮겨질 듯합니다. 이날 공연도 하는데 각설이가 와서 재미나게 하고 돌아가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회비는 가구당 1년에 10만원입니다. 현재 우리 마을은 15호에 22명이 거주하고 계십니다.”

 

김대열 이장의 말을 듣다보니 문득 궁금한 게 있었다.

 

이장님, 이장님께서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여기서 계속 사셨어요?”

 

아니요. 우리 큰애 초등학교 2학년때까지 여기서 농사를 짓다가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나무를 좋아하다보니 올라가서 조경 일을 하다가 건축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애들 어느정도 크고 해서 사업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 날 나는 김대열 이장님의 말을 뒤로 하고, '511일 다시 들리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11일 다시 호덕마을을 찾았다. 각설이가 공연을 준비하는지 재미난 말로 몸을 풀듯 얘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차려놓은 부폐음식을 가져다 먹고 난 후 커피에 소주 한 잔에 담소를 하고 있었다.

함평방송에서 나왔다고 인사를 드리다보니 누가 반갑게 손을 잡았다. 이번에 범덕회 총무를 맡았다는 김세권 씨였다.

 

제가 범덕회처음 시작할 때 총무를 맡아 일했는데 이번에 또 맡는다고 자청했습니다. 이번 총회에서는 여러 안이 의논 되었는데 범덕회끈을 이어가야 하니 회원 2세들도 가입 시키자. 그렇게 해서 범덕회 행사 때마다 데리고들 오자 다짐을 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고향이 우리 아들, 딸들에게도 고향과 같게 이어지게 하자는 것이지요. 저는 인천에 사는데 가끔 제 주변에 고향에 대해 안 좋은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고향이라고 다 좋을 수만 있겠습니까? 그럴수록 내 스스로 더 좋은 일, 좋은 정을 더 쌓아야 한다라고 생각해요고 말씀하셨다.

 

▲ '범덕회' 주관의 효도잔치에 참가한 회원들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자리 하였다.     

  

범덕회 회원들의 11번째 범덕회 효도잔치를 기념하기 위해 경로회관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였다. 각설이는 이때다 싶은지 사진촬영을 마치자 김대열 이임회장을 불러다 놓고 노래를 주문한다.

 

요즘 같은 세상, ‘누가 고향 마을을 매년마다 잊지 않고, 꼭 찾아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살아갈까?’ 이런 생각에 잠기다보니 범덕회시작을 추진했던 박종삼 고문, 김세권 총무와 역대 회장들이 달리 보였다. 각설이도 이를 아는지 이들을 차례로 불러들여 힘껏 추켜세우고 노래를 시킨다.

 

▲ 범덕회 1대부터 4대회장이 호랑이 동상 앞에 섰다. 사진 좌측부터 1대회장 2대회장 3대회장 이번에 선출된 4대회장    

   

이날 호덕마을에 '범덕회' 주관 경로잔치는 잘 버무리고 비벼진 함평육회비빕밥을 먹고 행복해 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것만으로 참 즐겁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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