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산 팥에 정성을 다하니 손님들이 줄을 서네요”

문장시장 내 팥죽집 ‘시장식당’ 주인 이정관·이외자 부부

조영인 기자 | 입력 : 2023/12/15 [14:30]

 

▲ 이정관, 이외자 해보 문장장 팥죽집 주인    

 

24절기 가운데 스물두번째 절기 중 하나인 동지는 대설과 소한 사이에 있으며 음력 11월 중에 있다.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기도 하다. 동짓날에는 동지팥죽을 먹는 오랜 관습이 있는데,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를 만들어 넣어 끓인다.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祀堂)에 올리고 각 방과 장독 · 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담아 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었다. 팥의 붉은색이 귀신을 쫓아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동짓날에 먹는 팥죽은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의미로 겨울에 유난히 생각나는 팥죽이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계절에 상관없이 일상적인 날 가벼운 식사 대용으로 찾는 분들이 많다.

 

함평 해보면 문장시장 내 시장식당은 옛날 시골 팥죽 맛을 그대로 재현한 곳으로 많은 손님들이 찾는 식당이다. 문장장의 대표 식당으로 동지를 제외하고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끼 즐기기 좋은 건강한 팥죽을 선보인다. 외지에서 검색으로 찾아올 만큼 한적한 문장시장 사이에 줄 서는 이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검증된 인기 맛집이다. 시장식당 팥죽집은 현재 이정관·이외자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문장장의 터줏대감처럼 여러 식당들의 번영이 피고 지는 과정에서도 건재한 이 식당은 꽤 오래전부터 줄 서서 먹는 집으로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원래 사장님이 건강상 이유로 장사가 불가피해지자 고향이 문장인 이정관씨가 우연한 기회로 이어받았다. 이정관씨 부부는 팥죽집을 인수하기 전에도 7년 동안 이미 건설 현장 근처에서 함바식당을 운영한 이력이 있다. 벌써 문장 시장식당의 팥죽의 맛을 이어간 지도 약 2년 차에 접어들었다.

 

포항에서 일반 음식점을 운영해 봤지만 이 팥죽집 일이 훨씬 더 어려워요. 팥죽은 준비 재료가 한정되어 간단한 음식처럼 보여도 맛을 책임지는 비법은 세밀한 차이로 완성됩니다. 팥은 불 세기에 따라 시간을 얼마나 투자하여 끓일 것이냐, 팥을 가스레인지에 삶느냐, 아니면 가마솥에서 끓일 것이냐수많은 변수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에요. 우리는 장작불을 직접 떼서 팥을 끓이는데 다른 집과 구별되는 맛을 손님들이 감별하세요.”

 

▲ 문장시장 내 팥죽집 '문장팥죽' 식당 전경    

 

팥죽집의 외관에서 풍기는 맛집 냄새는 허름한 건물이지만 미관상 불쾌감을 주지 않고 맛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하는 긍정적인 평판이 따라왔다. 이정관씨 내외는 맛집인 식당을 인수할 때만 해도 막연한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만큼 전 사장님께 확실한 비법을 전수받았고 안정적인 비법과 더불어 식당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다음 단계의 성장을 위한 레시피 개발에 정진했다.

 

기본에 충실할수록 보장된 맛을 구현할 수 있는 법. 이정관씨가 절대 수칙을 고수하는 것이 바로 모든 재료는 국내산을 이용하는 점이다. 함평의 먹거리를 이용하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되고 손님을 붙잡는 키포인트가 되었다. 중요한 준비물인 팥 전량은 함평에 거주하는 분들에게 공급받는다. 가게에도 농사품을 가져오는 어르신들이 제법 되는데 그런 방식을 통해서도 자주 구매한다. 올해 구매한 팥의 양만 해도 무려 2(t)이다. 소위 시골의 특성상 식당에 보따리 채로 들고 와서 작은 양을 파는 분들도 있지만 미리 상의를 통해 팥을 재배하고 있는 농가와 협의 후 대량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몇 번을 반복해도 모자란 팥죽의 핵심 기본 재료는 팥이다. 이 못지않게 맛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재료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소금이다. 최근에는 일본 오염수 방류 이슈로 일반 가정집까지 소금을 미리 비축하는 이례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이정관씨 부부도 안정적인 먹거리 공급에 책임이 있는 만큼 신안 소금 250포를 구매해 둔 상태다. “장사를 못하게 되는 일은 있으면 안 되잖아요.” 공급가 상승으로 금액적인 부분이 부담될 수도 있지만 음식점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맛의 안전성에 문제가 터져버리면 훨씬 막대한 손실을 가져 오기에 충분히 선투자할만한 가치라 판단했다. 특히 죽집의 특성상 소금이 더 맛있으려면 간수가 빠질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는 것도 음식의 맛을 상승시키는 방법 중 하나이기에 기지를 발휘한 셈이다.

 

국내산 팥을 사용하고 첨가물을 일절 넣지 않고 오로지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이 소금을 어느 시점에 넣느냐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팥죽은 새알과 칼국수 두 종류가 있는데 두 종류 모두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는 소금의 양에 따라 쫄깃거림을 결정시킨다. 최적의 맛을 찾기 위한 고아한 분투를 해낸 이 부부는 철저한 개량을 통해 음식의 맛을 유지시킨다.

 

팥 삶을 때부터 계량은 필수적이에요. 물을 얼마나 붓고 얼마만큼 삶을 것인지, 팥 삶을 때도 소금을 얼마나 넣을지 전부 계산한 결과니까요. 사람들은 단일메뉴라 조리 과정이 단조롭겠다 생각하실 수 있는데 눈에 보이는 것보다 상당한 노력이 들어가요. 조금만 실수하면 손님들이 대번 맛이 변했다고 알아차리셔요. 손님들의 입맛은 절대 속일 수 없더라고요. 한번은 조리 과정을 간편하게 하면 어떨까 싶어서 가스레인지에 팥을 삶은 적이 있었어요. 바로 그날 오신 손님들이 팥죽 맛이 이상해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주신 거죠.”

 

시장식당 팥죽집의 정식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하지만 대게 오후 3시쯤, 재료 소진이 된다. 이정관 씨 부부는 새벽 4시에 출근하여 미리 나와 팥을 삶는 것을 매일한다. 이 과정에 2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지난한 준비 과정이 선행되는 팥죽집 운영은 가게 뒤편 가마솥 역할이 크다. 몸이 힘들어서 딱 한번 요령을 피운 것이 가스레인지로 팥을 삶는 것인데 바로 손님이 포착하게 된 경험을 겪고 육체적으로 힘들지언정 맛의 보장을 위해선 꼬박 새벽 4시부터 하루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최상의 맛의 팥죽을 내줄 수 있다는 자부심, 일례로 서울에서 오신 손님이 식당에서 팥죽을 드셨지만 먼 길을 가면서 따로 또 팥죽을 포장하셨다. 새벽 일찍 기상한 피로함이 상쇄되는 소박한 행복 덕에 다음날 일찍 기상할 힘을 얻는다.

 

일반적으로 평일은 평균적으로 팥죽이 총 80-100그릇이 판매되며 주말에는 관광객들도 많이 방문하여서 보통 120-130그릇을 내어 드린다. 문장장의 활성화가 아쉬운 실정 속에서도 장성이나 목포에서도 구태여 찾아오는 분들이 많은데 방문객의 80%가 외지인들일 정도로 사랑받는 식당이다. 앞으로의 운영 방향은 문장장의 발전이 동시에 보완되어야 함을 피부로 느낀다. 인기 맛집을 인수받을 당시 마음 한켠에는 식당의 생존에 대한 고민도 컸다. 시장을 색깔로 비유하면 잿빛으로 보일 정도로 사람이 없으니까 가게가 지속될까 싶었다. 정기 장날이 아니어도 식당을 하려면 어느 정도 고정 손님들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장날조차도 예전의 시장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사람의 수가 적은 게 눈에 보여 버리니까 평상시에는 과연 손님이 올지, 근원적인 물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시장 현황의 차이를 감응하는데 안테나가 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 이정관씨가 해보면 성대마을이 고향이어서일 터. 해보중앙국민학교, 해보중학교를 졸업한 토박이로서 객지생활을 한 후 돌아온 고향의 모습을 바라보니 호황을 온몸으로 느낀 문장장의 옛 모습이 전생처럼 보일 만큼 생경함에 휩싸였다. 그가 어린시절엔 우시장을 비롯하여 돗자리전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고, 장에 들어와 장사를 하고 싶어도 가게 빈자리가 없을 때였으니딴판인 현 시장을 바라보고 한 근심이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걱정은 기우일 뿐이었다.

 

막상 장사를 해보니까 점심시간이 되면 손님들이 들어오는 거예요.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찾아오는데 순서를 기다려야 할 때는 잠시 시장 한번 둘러본다고 가세요. 그런데 손님 입장에서는 시장 점포가 전부 닫힌 모습만 봐요. 다들 시장이 왜 이러냐고, 옛날하고 너무 다르다고 하시는 분이 정말 많으셔서 발전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는 상황입니다.”

 

시장식당 팥죽집은 문장장에서 드물게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지만 멀리 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장 상인들이 함께 가야 한다. 문제는 문장장은 열린 점포보다 닫힌 점포가 더 눈에 띈다. 인근 신상 아파트가 들어올 예정이라 상권을 관찰할 겸 종종 사람들이 입지를 살피러 오곤 한다. 맛집은 결국 팥죽집으로 귀결되어 그 손님들은 또 잠시 기다리는 동안 시장 구경을 하겠다고 나가지만 딱히 볼 게 없는 현상이 되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블랙홀에 갇힌 느낌이다. 문장장은 가겟세가 너무 저렴하여 새로운 장사 희망자를 받지도 않고 심지어 본래 가게를 창고처럼 쓰는 점포주들이 많은데 이를 규제할 생각도 없다.

 

실제 활발히 운영하는 상인들은 문제가 눈에 보이지만 군에서 허가 없이는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기에 답답함에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이정관씨 부부는 팥죽집이 이토록 장사가 잘되지만 온전히 기뻐할 수도 없다. 여전히 전 사장님의 명의로 가게가 되어 있어서 분명 본인들이 운영하고 있는데 내부적으로 살피면 그들이 종업원처럼 일하는 형국이다. 전 주인이 건강상 문제로 더 이상 식당을 맡을 수 없고 주인이 임대차계약서를 선뜻 주며 이전을 허가한다고 면사무소를 찾아가 사정을 말했지만 군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다는 허들에 갇혀 거절만 당할 뿐이다. 여러 한계에 맞물리니 시장에 새로운 점포가 들어와서 활기를 찾으려 해도 절차적으로 거부되는 상황이다.

 

제 생각에는 시장 내 점포가 몇 군데만 문을 더 열어도 시골에 농사짓는 분들이 농산물을 가져와서 팔 수도 있으니 번성이 곧 될 것 같거든요. 처음에는 힘들 수 있지만 결국은 입소문 덕을 볼 수도 있는데 군입장에서는 재개발에 들어갈 경우 보상 문제가 번거롭다고 미리 차단하고 보완할 생각이 없어 보여요. 빈 점포가 해결되면 제가 추가적으로 옛날 시골 추어탕 방식으로 식당도 해보고 싶고요. 장사를 하고 싶은 분들이 분명 더 있거든요. 조속히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어 문장장이 골고루 조명받는 가게들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이정관씨는 시장의 활성화의 문제를 잠깐 논외하고 주민들이 해보면에서 오래 상생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부상조하는 작은 배려가 필요하다고 첨언했다. 그는 겨울철에도 이른 새벽부터 마을을 배회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눈이 오면 스스로 제설작업을 해왔다. 자신의 가게 앞은 말할 것도 없고 근방의 노인정 앞까지 쌓여있는 눈을 치웠다. 새벽 4, 고요한 아침에 팔팔 팥이 끓는 동안에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동네 어르신들이 혹시나 노인정 가시다가 넘어지진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동네를 쓸고 다녔다. 이러한 선의를 강요할 수는 없지만 마을 주민들이 그들의 집 앞의 눈만이라도 잘 치워주게 되면 모두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길목이 정돈될 것이다.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는 아침을 보내는 이정관씨는 동네의 새하얀 눈을 정비하여 유난히 깊고 어두운 겨울의 새벽을 따뜻한 내면의 온도로 녹였다. 어느덧 일년이 지난 후 겨울이 도래했다. 팥죽을 쑤면서도 해보면 문장장의 번영을 누구보다 내 일처럼 걱정하는 주민들이 남아있기에 문장장의 침체가 곧 동면에 깨어나 새로운 봄을 맞이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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