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각색 민원이 끊이지 않지만 언제나 웃으며 일해요”

김수정 수도검침원

조영인 기자 | 입력 : 2023/11/16 [18:15]

 

▲ 수도검침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수정씨    

 

여성 수도검침원으로 근무하는 김수정씨는 월야면 전역이 일터이다.

원체 익숙한 곳이고 심적으로는 편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일터가 되어 경험해보니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직업이었다. 김수정씨가 태어난 곳은 해보면 대창리 성대 마을. 고등학교부터는 인근 광주로 이동하여 대학까지 졸업했고 몇 년의 직장생활을 거쳐 해보면으로 귀향했다. 그렇게 돌아온 고향에서 결혼이 곧 독립이 되어 자신의 가정을 꾸렸다. 공공기관의 계약직, 노인 생활지도사를 거쳐 개인사업자의 신분으로 일을 하는 수도 검침원을 시작한 지 벌써 3년 차라는 시간에 접어들었다. 수도 검침은 우려보다 더 큰 육체적인 힘을 요구하고 건강의 염려로 이어지는 위험 직종 중 하나다. 때론 철판, 맨홀 뚜껑 같은 중량물을 반복해 들고 허리를 숙이는 일을 반복하기도 한다.

 

이런 경도 높은 일에는 보통 남자 검침원이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직업은 힘이 관건이라 남성 주류의 직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각 가정과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여성 검침원으로 구성하여 검침을 대행하는 추세다. 여성 수도검침원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은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의 세계가 확장됐다는 뜻으로 긍정적인 신호탄이다. 수도검침은 한 달에 14(대게 10~24) 동안 정해진 기간에 현장 검침 업무를 한다. 수용가를 찾아가 검침 후 사용된 계량기 숫자를 입력하면 된다. 사무실에서 지참해 온 해당 가정의 고지서에 적힌 검침 숫자를 꼼꼼히 비교 대조하고 송달까지 하는 일이기에 집중력이 필요하다.

 

수도검침원은 개인사업자의 신분으로 운영하는 일이라 자영업자와 다름없다. 계절에 따라 유동적으로 시간을 조절해서 일한다. 하절기와 동절기는 특징이 각각 뚜렷해서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이치가 일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된다. 회사원처럼 9 to 6라는 정확한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낮이 긴 더운 여름에는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고 제일 더운 시간에는 중간에 쉬고 일을 재개하는 방식을 택한다. 또한 겨울에는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최대한 환한 시간에 끝내도록 서둘러 바삐 움직이는 편이다.

 

집집마다 어르신들이 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혼자서 하는 일은 맞지만 성격이 외향적이라면 큰 도움이 된다. 어르신들도 자식처럼 편하게 대하는 분들이 많아서 어떤 상황이 와도 포용적인 자세로 대응할 수 있는 수더분한 성격이라면 일적으로 유용한 면모라는 것은 분명하다.

 

저는 조직 생활보다는 1인 사업자로 일하는 지금이 성향적으로 더 맞고 편해요. 어릴 때는 소극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었는데 대학 생활하면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덕분에 수도검침원으로 일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요. 실제로 주위를 봐도 외향적인 성향이 강한 분들이 수도검침원 일을 많이 하는 것 같고요. 그렇지만 성격이 밝다고 해서 민원에 마냥 의연할 수는 없어요. 저희도 상처 많이 받아요. 처음엔 너무 힘들었어요. 물론 시간이 흘러도 익숙하지 않은 것 역시 민원이고요. 민원이 저희의 잘못과 상관없이 수용가 입장에서 개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 이유로 받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에요.”

 

시골 마을의 수도검침은 도시에서 하는 것과는 다른 결의 지난함이 있다. 노인분들 입장에 볼 때 옛날부터 좋은 마을에는 늘 개울가가 있고 없다면 우물을 파고 물을 길러서라도 자연적으로 충족해왔다. 물을 돈 주고 쓴다는 개념이 형성될 수가 없는, 예사로울 리 없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어르신들은 무료로 누리던 것을 수도세를 내고 이용한다는 현재의 모습을 완벽히 적응하기가 지금도 어려워 보인다고 받아들였다. 그 연장선에서, 검침에 필수적인 집 안에 있는 계량기까지 본인이 자산처럼 여기고 애지중지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검침을 다니다보면 시골 내 집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이 계량기를 덮는 적재물로 인해 일에 차질이 생긴다. 제일 좋을 때는 건물일 경우 계량기가 외벽이나 내벽 쪽에 붙어 있어 찾기도 쉽고 검침하기 간단하다. 대부분 시골은 단순히 맨홀 뚜껑을 들추기도 힘든데 주변에 온갖 적치물까지 쌓아놔서 더 찾기 힘들게 가려 놓은 격이다.

 

장마철이라면 벌레가 많은 것도 곤욕이지만 더 상위의 고충은 겨울에 속한다. 겨울은 동파 걱정이 심한 어르신들에게 가뜩이나 적치물이 문제가 되는데 이 계절은 유독 심하다. 검침에 방해가 될 만한 온갖 용품으로 동파 방지를 해놔서다. 짐들을 일일이 들추기 힘들뿐더러 겨우 가득 쌓인 물건을 치워가며 수도 검침을 하더라도 작업이 끝난 후 조금이라도 처음과 다른 모습으로 맨홀 뚜껑을 덮어놓으면 제대로 안 됐다고 민원이 들어오는 식이다. 시골 수도 검침은 도시와 다르게 뚜껑이 분리되는 형식이라 일명 그들끼리 통칭하는 꼬챙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뚜껑을 연다. 그렇게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가는 일이며 1인 사업자입장에서 맨홀 뚜껑을 여는 빈도가 많을수록 급여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해요. 우리가 수도를 다루니까 물로 보는 거 아니냐고요. 하하하

 

가지각색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 직업이다. 수도 요금은 결국 돈이 개입하는 문제라서 평소보다 많이 나왔을 때가 문제다. 사실 검침이 잘못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검침원들도 이 분야가 얼마나 민원에 민감한지는 도가 튼 분들이라 크로스체크는 필수다. 검침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신중하게 꼼꼼한 태도로 최선을 다한다. 수도는 전기와 다르게 장기간 연체돼도 전기 끊기듯 사정없이 단칼에 절수 되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모 기사에서도 언급된 일을 인용하자면, 한 수도검침원이 장기간 체납으로 무려 1년 이상 요금을 내지 않은 집에 찾아갔다가 집주인에게 멱살을 잡힌 일화가 있다. 민원을 일으키는 반응의 시작은 수도 요금을 내게 한 검침원이 기본적으로 잘못 본 것일 거라는의심이 일반적인 레퍼토리다.

 

 

김수정씨도 물을 돈 주고 사용하는 것이 여전히 이질적이고 생경한 모습으로 다가올 어르신들은 일반적으로 아껴 쓰는 경향이 크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어르신들은 본인은 충분히 아껴 썼는데 기준 이상의 요금이 나와버리니 더 민감하게 감응한다고 판단하고 이해도 해보지만 반복되는 민원은 지치기 마련이다.

 

한달에 14일을 일하더라도, 하루에 많은 가구들을 몰아 돌아다니다 보니 하지정맥류와 족저근막염, 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많다. 직접 근무해보니 김수정씨도 왜 이 직업이 이직률이 높은가체감하기에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수도검침원으로서 미래를 그려보면 오래는 못하겠다는 생각도 스친다. 미래에 대한 큰 불안함은 아니고 단지 노후 대책으로 노인요양보호사 같은 자격증을 마련해놓긴 했어도 그게 당장 이 직업을 그만두자고 한 일은 아니다. 고향 해보면에 살면서 불편한 점도 많았다. 누구의 딸은 결혼과 동시에 누구의 자부로 전락하여 입에 오른다. 관계 중심적인 시골 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애로사항은 없다고만은 못하지만 그런 입소문에 예속되지 않고 봉사를 하며 묵묵히 인간적인 도리를 해왔다. 번영회 활동을 꾸준히 한 결과 12년째 지속하고 있다. 천주교 신자로 성당 활동은 물론 여성들이 도움을 줄 수 있는 행사에 지속적으로 참석해 음식을 도와주는 등 여러 봉사를 하고 있다.

 

여성 수도검침원으로서 어려움에 노출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막연한 걱정보다는 수용가를 방문해 계량기 숫자를 기록하는 보통 일을 통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행복에 집중하고 싶다. 수도검침원 김수정씨는 이제 찬 바람이 불고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민감하게 감각할 수밖에 없다. 3번째 맞는 겨울이 그저 반가울 리 없겠지만 이번 겨울에는 추위가 덜하고 순탄한 수도검침을 진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시골 어르신들이 동파 걱정에 해방될만한 견딜만큼의 추위가 찾아와 안심하고 출근할 수 있는 일터를 선물 받기를 가을바람에 날려 편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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