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방송에서는 다가오는 5.18을 맞이하여 <함평 5.18의 진실>을 연재합니다. 2021년부터 시작된 '왜곡된 함평 5.18'을 바로 잡으려고 앞장 선 이가 그 주인공입니다.
함평 5.18과 관련된 3건의 소송에서 피고였던 최창호 대표를 함평방송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앞으로 3회에 걸쳐 옮깁니다./편집실 Q_대표님이 3건의 소송을 당한 함평 5.18 왜곡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요? A_함평은 80년 5월 18일 이후 21일 오후 1시경 고속버스와 트럭 등 10여대의 차량에 나누어 광주지역의 시위대가 나주를 거쳐 함평에 도착하면서 광주 상황이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5월 22일 함평장날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의미로 군민궐기대회가 함평공원에서 열립니다. 이 대회는 지역 유지들과 함평읍장 등이 중심이 되어 함평지역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목적으로 열리는 데 150여명 정도 사람들이 모입니다. 이 사건을 2018년 본격적으로 민주화 운동으로 각색, 왜곡을 하게 됩니다.
Q_그렇군요. 모인 인원이 150여명이라고 하셨는데 다른 기록에서 보면 700여명으로 나오던데요? A_당시 참가자들은 100명에서 이쪽저쪽이라고 증언을 합니다. 문제는 인원 수가 해를 거듭할 수록 500명, 700명, 1000명으로 부풀려집니다. 그리고 이 궐기대회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마치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모두가 한 사람이 자기 중심으로 왜곡하는 데 그 시작점은 보조금을 받아 펴내는 문화원 책에 기록하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2018년 도서출판 호남에서 출간된 2권의 책 ‘호남가 첫고을 의향함평’ ‘의향함평의 향토사와 설화’에 올려지게 됩니다. 5.18이 일어난지 38년 세월이 흘러 사람들이 기억에서 가물가물 할 무렵, 함평공원에서 있었던 군민을 안정시키려고 행해진 궐기대회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궐기대회로 바뀌어진 겁니다.
Q_함평공원에서 있었던 1980년 5월 22일 궐기대회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A_저는 함평공원에서 궐기대회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걸 2021년부터 줄기차게 강조하였습니다. 전라남도 관계부처에 입증되는 자료를 모두 다 제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2022년 12월 1일 함평공원에 전라남도에서 지정한 5.18 사적지가 철회되었습니다. 5.18사적지철회 고시는 함평공원, 당시 궐기대회가 민주화운동이 아니라는 증거이자 증표입니다.
철회하는 고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함평공원 궐기대회는 동기간에 진행되고 있었던 광주항쟁에 대한 지지와 참여를 위한 민주화 운동 성격의 행위보다는 항쟁의 여파로 인한 지역 혼란과 피해방지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결의대회였고 5.18민주화운동과는 부합성이 낮은 사건이라 판단해 5.18사적지 지정 철회를 한다.”
2023년 1월 16일. 5.18사적지 비석이 세워져야 할 자리가 아니기에 함평공원에 비석은 철거됩니다.
Q_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함평에서 1980년 5월 18일 이후 군민들을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게 하는 궐기대회가 열렸다면 당시에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을 거고 지금도 추앙 받을거라 봅니다. A_맞습니다. 그 때에는 사회 분위기가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허가 받지 않은 집회는 사복경찰이 주동자를 바로 잡아가는 시대였습니다. 모든 집회는 허가된 집회만 가능했고 유인물이 있다면 미리 경찰서에 검열을 받아야 했습니다. 서슬퍼런 통제된 시대였습니다.
5월 22일 군민궐기대회는 고인이 되는 박*영씨의 증언에 의하면 “김*수가 21일 오후에 잘 모르는 사람과 찾아와 다음 날 궐기대회 건으로 나승포 군수를 면담하고 갔다.”라고 말하였습니다.
5월 22일 “함평공원 궐기대회주동자들은 군수에게 식비를 요구하여 20만원을 읍장으로부터 받았다.”는 기록도 ‘5.18민중항쟁’ 책자에 나와 있습니다.
정리하면 1980년 5월 22일 함평공원에서 궐기대회는 함평군, 경찰의 협조하에 이루워진 집회로 함평을 당시 폭도라 불리는 사람들로 부터 안전하게 지키려는 행사이지 민주화를 열망하는 집회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훗날 폭도가 시민군이 되고 폭동이 민주화 운동으로 바뀌게 되면서 함평공원 궐기대회를 주도했다는 한 사람은 고인이 되고, 남은 한 사람이 당시 궐기대회를 민주화운동으로 묘사하여 2018년 함평 설화집에 넣으면서 왜곡이 시작 되었습니다.
2021년 5월 17일에는 함평5.18의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함평공원 궐기대회를 추켜세우는 기념식이 함평 최초로 열렸습니다. 그 때 기념식 장소는 함평공원이었습니다.
Q_아, 이 때 2021년 5.18 기념식에 대표님이 왜곡된 모습을 목격하고 본격적으로 진실을 파헤치는 출발점이 되는군요. A_맞아요. 제가 알아보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이 싯점입니다. 그때만해도 지금 전남에서 5.18 유공자회, 부상자회 회장을 맡고 계시는 김행구회장님, 김관 회장님에 대한 언급이나 기록이 단 한 줄도 없었습니다.오로지 함평공원에서 궐기대회 했던 게 함평 5.18은 전부였습니다.
다행히도 그 때를 기억하는 생존자들이 계셔서 저는 인터뷰 하고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함평에 시민군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드러냈습니다. 함평 시민군은 5월 22일 함평공원에서 궐기대회를 보고 '이건 아니다' 라고 반발하듯 전날 광주시민군이 버리고 간 펑크 난 버스를 고쳐타고 광주로 향했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당시 젊은 청년 김행구가 버스를 운전하고 오경식, 김관, 김행엽 등 25여명이 함평사람들이 광주 시민을 구하겠다고 광주로 향합니다. 손에든 건 각목이 전부인 이들은 '우리 전라도 사람들을 무참히 죽인다는 공수부대와 맞서싸우겠다.'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광목간 1번 국도로 접어듭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함평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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